생활 상식들

일본 라멘의 단상....

서 우 진 2011. 8. 24. 03:26

                                  

                                       

요즈음 이곳저곳에 일본 '라멘'을 파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본라멘집을 볼수 있는데요 일본마켓식당에가야만 먹을수 있었던 라멘이 LA 한인타운에서도 점차 늘어나고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난 글이 있어 스크랩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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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본의 유명한 라멘집의 상호와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는 곳도 있는것 같습니다. 혼선을 피하기 위해 우선 용어정리를 하자면, 편의상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쇼유라멘, 돈코츠라멘 같은 ラメン을 '라멘', 신라면 삼양라면 같은 인스턴트 라면을 '라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라면이라서, 한 때 '생라면'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라멘'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점점 애호가가 늘기 시작하여서, 앞으로도 더욱 유행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 라멘이라는 '일본음'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이차대전 전부터 일본에 있는 화교들이 팔던 음식으로 이름은 시나소바(支那そば: 중국)로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한 뒤 점령당시 중국을 지칭하던 '시나(차이나)'라는말에도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서, 점차 그 표현이 없어지면서 등장한게 중국식 라미엔(拉麵)을 음차한 ラメン(-)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멘'은 전후 영양상태가 안좋았던 일본사람들에게 커다란 환영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다시마와 가츠오부, 그리고 간장으로 국물 맛을 내는 소바, 우동보다는 닭뼈, 돼지고기, 야채 등을 넣어 우려낸 국물이라 기름지고영양이 풍부하였기 때문이지요. '차슈'라고 불리는 돼지고기 몇점이 들어간 라멘 한그릇을 밤에 출출할 때 간식으 로 먹기도 하고 해서, 밤에 수레를 끌고 챠르메라라고 불리는 나팔소리를 내고 다니며 라멘을 파는 행상도 많이 있 어서, 나이든 일본인들에게는 챠르메라의 애수어린 소리가 아련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이 라멘의 인기를 대량생산으로 이어보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었으니 대만출신 화교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었고그는 닛신(日淸)식품이라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즉석면 메이커의 창업주이자, 인스턴트 봉지라면, 컵라면의 발명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 초반에 삼양식품이 들여왔고, 그 뒤 라면은 '국민식'이 되었고...

그 다음은 우리가 다아는 역사입니다(자세한 내용은 까날님 참조). 그런데 '청출어람'이라고 인스턴트 라면은 우리나라가 맛과 응용면에서 종주국 일본보다도 더 앞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발달한 것은 '라멘'이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식당엘 가면 오리지널 '라멘' 이 있고, 그걸 집에서 간단하게 먹고 싶은 사람이 해먹는게 '인스턴트 라멘'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예 식생활에 존재하지 않았던 맛이 갑자기 뚝 떨어져 독자적인 발전을 한 거니까, 새로운 행보를 다양하게 시작할수 있었던 거 아닐까하는 생각말입니다.

 

재밌는 것은 옛날에 일본에 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우리나라 라면맛을 기대하고 라멘집에 들어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느끼하다', '맛이 없다' 등등 실망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여행 유학 주재생활 등을 통하여 일본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지금 이제 '라멘'을 그동안 익숙했던 라면이 아닌, 일본의 다른음식, '라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고있는 것 같습니다. 라멘 얘기가 길어졌네요.

 

우리나라 식문화에는 이렇게 라면처럼 오리지널부터가 아니라, 도중에 파생된 '변형'부터 들어온 경우가 많습니다.해방뒤 얼마 안있어 미군이 참전한 전쟁을 겪었고, 그 뒤 계속 한국에 주둔한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난해서 먹을게 별로 없던 시절에 미군부대 PX 에서 흘러나온 식품은 한국인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이아니라, 풍요로운 나라 미국에 대한 동경을 키웠습니다.

 

도깨비 시장, 양키물건, 피엑스 아줌마, 국제시장 등등 지금은 낯설어진 단어와 함께 하인즈 케첩, 리본표 마요네즈, 맥스웰 커피, 폰즈 콜드크림, 코티 분, 저겐스 로션, 다이알 비누, M&M 새알 초코렛, 허시스 밀크 초코렛이 좀 산다는 가정에는 익숙한 품목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던 겁니다.

 

이 때 들어온 '스팸' 등의 런천미트라는 가공 육류제품을 한국사람은 햄으로 먼저 알고 먹었습니다. 가공되었다는의미로 '프로세스 햄'이라 불리는 각종 품목의 가공육이 천연햄, 그러니까 진짜햄이 소개되기 전 수십년 동안 한국인의 식탁을 지배한 겁니다. 프로슈토, 하몽, 쟘봉등으로 표기되는 천연햄을 먹으며 질기다, 짜다 이렇게 얘기하는사람이 있는 건, '라멘'을 먹으며 '느끼하고 닝닝한게 라면만 못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치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공했다는 의미로 '프로세스'라는 단어가 붙은 프로세스 치즈가 먼저 들어왔기에 천연치즈보다 훨씬 인기가 있습니다. 노랗게 색소를 넣고 먹기좋게 얇게 썰어 비닐로 한장한장 나누어놓은 치즈를 우리는김밥에도 넣고, 밥에도 얹어먹고, 부대찌개와 라면에도 넣어 먹습니다.

 

그래서 꺄만벨, 블루, 체다, 꽁뜨, 파르미잔, 모짜렐라 등의 숱한 천연치즈가 소개되어도, 여전히 노란 가공치즈에대한 애정과 충성심은 강력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대목을 쓰다 생각난건데, 천연햄을 대신한 가공햄인 스팸, 천연치즈를 대신한 가공치즈, 오리지널 라멘을 대신한 인스턴트 라면을 넣고 만드는 부대찌개야 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응용력이 아낌없이 발휘된 음식인 것 같네요. 스팸을 먹다가 스팸을 스시처럼 밥에 얹어서 김으로 띠를 두른 '팸 무스비'를 만들어 낸 하와이 사람들보다 더 기발한 메뉴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쵸콜릿도 카카오 마스와 카카오 버터를 일정 비율 이상을 넣은 '진짜' 쵸콜릿보다, 설탕과 전지분유 그리고식물성 기름을 넣어 상온에서 잘 녹지않고 보관이 쉽게 만든, 그러니까 미군용으로 대량 생산된 '미제 쵸콜릿'이 우리에게 오랜 세월 친근하게 옆에 있어서인지, 유럽의 유명한 쵸콜릿 제품을 먹어보고는 너무 크리미하고 단 것이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커피도 원두가 들어오기 수십년전부터 인스턴트로 먼저 소개된 탓에, '커피믹*'가 연매출 일조원이 넘는 등 여전히 인스턴트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문맥에서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뭐든지 오리지널이나, 천연의 그것이 좋다고 말하려는 것이아닙니다. 음식은 관능검사의 결과에서도 보이듯이, 사람에게 있어 맛있는 것은 익숙함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요인으로 결정되니까요. 다만, 천연의 것과 가공의 것이 있다면 양쪽 다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의 폭이 넓어 더 좋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 퍼온글 .. 밥과술에서 >